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디라키움 공방전 (문단 편집) === 포위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Dyrrhachium_48_en.png|wid=300&height=350]] 카이사르의 목적을 파악한 폼페이우스는 급히 본군을 디라키움 기지에 집결시킨다. 이 과정에서 카이사르군이 폼페이우스군 주변으로 포위막을 형성하고, 디라키움 남부의 압수스 강에서 폼페이우스의 병력은 강의 북쪽에, 카이사르의 병력은 강의 남쪽~~강남~~에 진을 치고 대치하게된다. 비록 폼페이우스의 군대가 질도 훨씬 떨어지고, 사기도 충성도도 더 낮은 편이었지만[* 심지어 폼페이우스의 군대에 편입된 군단 중 14, 15군단은 원래 카이사르 휘하의 병력이었다.] 수적으로 카이사르군을 압도했기 때문에 카이사르는 병력 증원이 절실히 필요한 상태였다. 원래는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휘하의 2진 병력이 카이사르의 본대와 합류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내전 초기의 제해권 장악 실패로 인해 폼페이우스의 해군 병력 때문에 쉽게 움직이기가 힘든 상황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안토니우스는 크나큰 도박을 하게 되는데, 카이사르가 압도당하기 전에 도착하기 위해 서둘러 출항했다간 계속 불고 있는 남풍으로 인해 카이사르의 위치보다 훨씬 북쪽에 상륙하기 때문에 강 북쪽에 진을 치고있던 폼페이우스의 군대의 표적이 되기도 쉽고, 폼페이우스의 해군력이 막강했기 때문에 자칫했다간 땅과 바다 양쪽에서부터 포위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어쨌든 안토니우스는 출항을 결심했고, 3월 26일 제2진의 1만 보병과 800기의 기병대가 브린디시항에서 출항한다. 출항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폼페이우스의 해군에게 발각되어 추격을 받기 시작하지만 당시 로마의 배에 달린 돛은 매우 원시적이어서 바람의 방향에 따라 흘러가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손 놓고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상륙을 위해서는 남서풍이 필요했지만 야속하게도 바람은 남풍이었다. 그렇지만 사령관 안토니우스는 얼마간의 피해를 감소하고서라도 상륙을 강행하는데, 전쟁사에서 꽤나 자주 보듯이, 이 상황에서 기적이 일어난다. 갑자기 바람의 방향이 남서풍으로 바뀌었던 것. 안토니우스의 함대는 피해가 전무한 채로 무사히 착륙한 데 반하여, 뒤에서 안토니우스를 추적하던 폼페이우스의 함선들 대다수가 바람을 거스르지 못하고 밀려가 근처의 해안 절벽에 부딪쳐서 침몰한다. ~~시밤쾅~~ 극도의 운으로 안토니우스 휘하의 2진 병력은 바로 다음 날인 3월 27일에 무사히 상륙했고, 상륙 소식을 전해들은 카이사르는 급히 진영지를 걷고 안토니우스와 합류하기위해 북진했다. 낌새를 챈 ~~눈치백단~~ 폼페이우스도 2진 병력의 합류를 저지할 수만 있으면 압도적인 우세를 얻게 되는 것을 알고 2진의 합류를 저지, 궤멸시키기 위해 진군한다. 카이사르의 입장에서는 병력 증원 없이는 큰 손실을 입을것을 알았기에 필사적으로 북진했고, 성공적으로 2진 병력과 합류한다. 소식을 전해들은 폼페이우스는 역공을 방지하기 위해 재빨리 보급기지로 귀환해 방어진을 펼치고, 이때부터 본격적인 포위 공방전이 시작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